교육학과 교수
Professor, Department of Education
고등교육정책연구소 소장
Director, Higher Education Policy Research Institute
난 현재 교육학과에 있는 대부분의 교수님들과는 매우 다른 경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또래의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1983년 대학에 입학해서도 정말 뭘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너무 무지하고 막막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래서 참 멀리 돌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참 행복하다. 무엇보다 일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어를 무척 좋아했던 꿈 많고 숫기 없는 대구의 문학 소년, 하지만 원하는 1지망이 아니라 뜻 하지 않게 2지망으로 입학한 서울대 국어교육과는 내게 큰 실망감과 함께 자신감 상실로 인한 오랜 방황을 안겨 주었다. 1991년 행정고등고시 합격 직후 ‘고시계’라는 잡지에 기고했던 ‘잡히지 않는 열등감의 끝에 서서’(http://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00150805)란 내 합격기 제목이 말해 주듯, 대학 입학 후 나의 생활은 끊임없는 남과의 비교에서 초래되는 열등감의 극복을 위한 지난한 투쟁의 과정이었다.
길고 긴 방황 끝에 열등감의 극복 수단으로 선택한 행정고등고시 합격 자체가 당초 내 생각처럼 몸과 마음에 깊이 드리워져 있던 열등감을 근본적으로 치유해 주지는 못했다. 합격 후에도 항상 나보다 뛰어난 사람,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내 마음에 평정을 가져다 준 것은 ‘행정고등고시 수석 합격’이라는 일견 찬란해 보이는 성취보다는, 오랫동안 고민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일깨워 준 ‘안분지족(安分知足)’,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삶의 지혜가 아닌가 생각된다. 즉 심적 만족과 안정은 세속적 지위, 명예의 쟁취라는 가시적 기준의 문제라기보다는, 스스로 만족의 내용과 수준을 어디에 두고 어떤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느냐 하는 내면적 기준의 설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이 때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대학에 진학했으면서도 과거 나와 같이 스스로 만족할 만한 학교/학과 진학을 못해 진로와 관련한 방황을 하는 많은 학생들은 이러한 내 경험이 참고가 될지도 모르겠다.
교육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임용 후 첫 발령지였던 경북대로부터 교육부 본부와 정부의 위원회(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정책기획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각종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실제 집행하면서, 사회 문제를 보는 시야를 넓히고 또한 경험을 통해 공부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국가로부터 혜택도 많이 받았다. 특히 1997년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무원 국비 장기 국외 훈련’의 수혜자로 선발되어 미국 University of Oregon에서 바라던 학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평소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유학의 기회가 마침내 내게도 온 것이었다. 행정 공무원으로 정신없이 일하다가 전혀 준비할 시간도 갖지 못한 채 무작정 시작한 유학 생활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3년 만에 교육정책 및 경영(고등교육 집중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유학 가자마자 IMF 외환 위기가 터지면서 능력도 부족한 가운데 조교 생활까지 하면서 학비를 벌어 어렵게 딴, 내게는 정말 의미 있는 성과물이었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박사 학위를 가지고 교수를 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유학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교육부 본부 생활은 정말 힘들고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교육을 바꾸어 보겠다’는 청운의 꿈을 품은 채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2년 반이 넘는 기간 동안 주말 없이 거의 매일 엄청난 초과근무를 하면서 몸과 함께 마음이 완전히 탈진되어 갔다. 그러던 즈음이던 2002년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OECD 사무국 고등교육기관 운영 프로그램(Programme on 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IMHE)에 파견을 가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말로만 듣던 국제기구에서 세계 각지에서 온 많은 전문가들과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교육정책을 비교 분석할 수 있었던 경험은, 내게 정책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다시없는 좋은 기회였다. OECD에서 3년간 상근 컨설턴트(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의 대학들이 참여하는 프로젝트(‘Supporting Contributions of Higher Education Institutions to Regional Development’)를 직접 구상하고 운영하면서 유럽의 곳곳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http://www.dbpia.co.kr/SKnowledge/ArticleDetail/NODE06745545). 공무원 시작 이후 과도한 초과 근무 때문에 거의 잊고 살았던 가족 생활의 즐거움도 다시 찾았다.
OECD 사무국 근무를 통해 업무와 생활면에서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그 간 당연시 해 왔던 공무원으로서의 비인간적인 근무환경에 심각한 회의가 들었다. 물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많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데 내가 나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이젠 그 길이 반드시 내가 교육부에서 직접 교육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떠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준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OECD에서 근무하면서 자연스럽게 선진 국가들의 다양한 교육정책 이슈와 논의 동향에 친숙해 지게 되었다. 국제기구에서 근무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도 많이 늘었다. 일하면서 짬을 내어 열심히 논문도 썼다. 3년간의 OECD 근무를 마치고 다시 시작한 교육부 공무원 생활, 아니나 다를까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삼시 세끼 밥을 먹 듯 날마다 밤을 새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사실 정말 견디기 힘든 문제는 아니었다. 보람이 있으면 격무로 인한 육체적 피로는 상당 부분 상쇄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 경력이 늘어갈수록 신명을 바쳐 열심히 만들었던 정책들이 정권이 교체됨에 따라 갑자기 휴지 조각으로 변해 버린다든지,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가 끝날 때 마다 소위 ‘소신도 혼도 없는 사람’이 되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의 설익은 아이디어에 스스로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무기력하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반복되었다. 이에 따라 내 평생의 소명과 같이 생각했던 공무원 생활이 정말 내게 맞는 것일까 라는 근본적 회의가 더욱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2008년 9월 마침내 16년간 내 청춘을 묻었던 공직을 떠났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공무원 조직을 떠나 적지 않은 나이 45살에 전혀 생소한 대학 조직에 완전 초보자로 와서 처음부터 다시 적응을 시작했다. 고시 합격 후 16년간의 경력은 학교에선 거의 인정되지 않아 맨 하위직급인 조교수로 부임했다. 그래도 기뻤다. 교육부 업무를 그만 둔 지 불과 2주 만에 난생 처음 가르쳐 보는 과목을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강의했다. 너무 힘들었다. 처음 3년 동안은 정말 앞만 보고 달렸다. 하지만 대학에 온지 어느 덧 8년이 넘은 이 시점 너무 고맙고 행복하다. 학생을 만나는 것이 좋고, 연구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정말 내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을 찾은 것 같다. 가끔씩 학생들에게 말한다. 공부하는 것이 즐거우냐고. 책을 읽고 고민하면서 정말 알고 싶었던 것들을 발견하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얻었을 때, 그리고 학생들과의 교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그들의 진심어린 고마움의 감정을 특별한 말없이도 느낄 수 있을 때 그 기쁨이란. 어디 그 뿐인가? 우리 사회를 어둡게 하는 심각한 교육 문제들을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안을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서 학회와 교육부의 정책결정자에게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은 내가 고등교육행정(정책) 분야에서 교수를 하는 이유이자 바로 삶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세상을 행복하고 의미 있게 사는 길은 사실 한 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길이 있다. 하지만 공부하는 것이 좋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교육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자기의 삶 중 정말 중요한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공부하고 언제든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내 경험으로 보면 혼자 끙끙대며 해법을 찾으려 하는 것 보다는 머리를 모아 함께 노력하는 것이 그러한 정열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방법이고, 또 찾아낸 해법을 정책으로 발전시키는데 있어서도 훨씬 더 효과적이기 때문에....
남들보다 멀리 돌아오긴 했지만 공직 사회와 대학이란 전혀 다른 두 조직의 경험을 오랫동안 몸으로 직접 느끼면서 살아 온 특이한 경력과 배경 때문에, 나는 학문으로서의 교육행정학 및 고등교육학의 역할과 기능*주1에 대해서 교육행정학계에서 만나는 많은 연구자들과 관점이 조금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더러 있다. 고등교육학을 포함한 교육행정학은 응용학문인 교육학의 각 분과학문 영역 중에서도 가장 응용학문적인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나는 (고등)교육행정학의 존재이유는 바로 연구자가 전문가로서 해결해야 된다고 인식한 문제에 대해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일정한 해답을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즉 (고등)교육행정학과 같은 응용 지향적 학문의 경우 ‘좋은 연구’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학문을 위한 학문, 연구를 위한 연구가 아니라 ‘현실적 문제해결을 위해 실천적으로 연구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응용학문으로서 (고등)교육행정 이론과 학설의 가치는 그것이 얼마나 현실적 문제해결에 실천적 적용가능성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일은 연구의 목적이 사회 문제에 대한 실천적인 해법을 찾거나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데 있다고 해서,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 연구방법론과 절차의 엄격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연구의 실천적 효용성도 결국 연구방법의 신뢰성과 타당성이 보장될 때 나오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다양한 연구방법의 철저한 숙지와 엄격한 적용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연구자라면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 주 1) 고등교육학이 별개의 독립된 학문 분야로 정립되어 있는 미국과는 달리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고등교육학은 대체로 교육행정학의 일개 하위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분과 학문간의 연계, 융합·통섭과 고등교육학의 향후 발전과제'(http://kiss.kstudy.com/journal/thesis_name.asp?tname=kiss2002&key=3309847) 참조.
2000년 6월 미국 University of Oregon 박사(고등교육정책 및 행정)
1993년 2월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수료
1991년 2월 서울대학교 국어교육 학사
2013년 교육부 장관 정책보좌관
2008년 9월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조교수로 부임
2002~2005년 OECD 사무국(교육국) 상근 컨설턴트(Programme on Institutional Management in HE, 프랑스 파리)
1992~2008년 교육부 기획담당관, 대학원개선팀장, 정책기획위원회 교육부 담당 과장 등 역임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수석 합격(교육 직렬)
준비중입니다